육아퇴근 후 일상, <60일 지정생존자>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기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의 하루는 둘로 나뉜다죠, 육퇴 전과 육퇴 후.

육퇴는 육아퇴근의 줄임말입니다.

아이들이 밤잠에 들면 아이들을 케어하기 위한 이목과 수발은 다소 잦아들기 마련이죠.

간혹 잠자리에 있는 아이들이 별일 없는지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컨디션만 괜찮다면 그 때부터 어른이들의 시간입니다.

둘째까지의 모유수유가 끝난 시점부터는 한참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한 때더라구요.

간 때문이기도 하고,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여차저차 알콜도 시들해지고 결국은 생산적인 루틴을 찾게 되었습니다.

못다한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필요한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요즘, 새로운 루틴이 생겼습니다.

 

세탁물 정리 같은 일은 엄청 귀찮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도 결국 제 손을 거쳐야하기에, 아이들이 잠들고나면 안방 텔레비전을 가동시켜둔 JJDAD 덕분에 오가며 요즘 텔레비전 방영 프로그램들을 듣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문득 아이들이 즐기던 넷플릭스 영화들이 줄줄이 저작권 계약기간이 종료되면서 키즈 컨텐츠 라인업이 대대적으로 변동되는 일들이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둘러볼 겸 접속했다가 꽤나 흥미로운, 그러나 타이밍은 놓쳤던 드라마를 발견했나봅니다. 

빨래를 개키다가 처음에는 청취하는 수준이었는데, 듣다 보니 어느새 본격적으로 시청을 하게 된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것이 <60일 지정생존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농담삼아 국회의사당 지붕이 열리면 로보트 태권브이가 나타난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 오고 갔었더랬습니다.(옛날사람 인증)

2019년에 방영되어서 드라마 내용을 알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계시리라 짐작됩니만, 이 드라마는 그 국회의사당이 폭발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의사당에 자리하고 있는 시각, 국회의사당 테러폭발사고로 대통령 및 청와대 행정관료들과 장관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권한대행직을 유일한 장관직 생존자인 박무진 환경부장관(지진희 역)이 맡게되고, 그 이후로 청와대를 비롯하여 국가 주요 기관과 정치현장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냅니다.

 

 

 

 

드라마이고, 픽션이니 국회의사당 폭발사고라는 과한 배경이 형성되지만, 반면에 꽤나 현실성 있는 부분들도 자주 등장해서 더 큰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국회의사당 테러사건이고,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정치적 이념이 대립하는 냉전을 유지하고 있는 곳에서 가능성 높은 테러단체 또는 국가는 자연스레 북한과 플랜비 정도로 이슬람극우단체가 지목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온 주한미군과의 전시작전통제권, 북한과의 대화방법, 일본의 자위대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한일 외교논쟁 등이 드라마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릅니다.

그 뿐일까요. 군부정권의 역사가 다시 살아 숨쉬려는 움직임과 국정원의 역할도 놓치지 않고 짚어내지요.

정당이름은 다르지만 여당과 야당의 정치색도 현실성이 풍부해서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집중력을 끝까지 끌고 가더라구요.

언론을 통해 속시원히 듣고 싶었던 내용을 드라마에서 듣고, 드라마에서도 역시 언론의 역할은 저널리즘의 그 무엇과는 거리가 멀어서 씁쓸했습니다.

 

아직 3개 에피소드를 시청했지만, 드라마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단지 블록버스터급 재난상황이나 전쟁과 평화를 오가는 외교논쟁 같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몰입감을 최고로 이끌어내는 각 배역을 통해, 인간의 권력욕 또는 야욕,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립해야하는 가치관, 일과 사랑 사이에서 냉철함을 찾는 과정도 그려낸 것 처럼 보여서 거대한 배경 안에서 작은 인간다움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이유 중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참을 쓰고나서 되돌아보니 굉장히 뒷북이네요.

그치만 아직 혹시라도 못 보신 분들께 꼭 볼만한 드라마라고 추천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육퇴 후에 종종 챙겨보는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